첫 글은 내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글로 시작하고 싶다. 우리 교회 목사님의 새해맞이 신년 기도회 주보에 실린 초대의 글이다.(하단 명시) 두터운 신학적 연륜과 인격적 신앙을 가진 분이었기에 어느 면에서나 단단할 것이라 여겼지만, 그도 결국은 연약한 한 인간이었음을 새삼 느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세대는 다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더욱이 믿음으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나약한 한 인간의 인간적인 동감 때문은 아니었을까.
갑자기 딴 소리같지만, 공교롭게도 현재 왼손 네 번째 손가락 접합되는 뼈마디가 아프다. 오후부터 시작된 경미한 통증은 저녁이 되자 손가락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통증이 심해졌다. 처음은 아니고 한 달 전쯤 같은 증세로 인해 한의원에서 치료받은 적이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해당 손가락이 약간 뻑뻑하는 등 다소 불편한 이물감이 느껴졌지만, 금세 회복됐기에 당시 한의원 치료 후에는 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게 문제였던 걸까. 다시 그때의 극심한 통증이 찾아왔다. 주물러도 보고, 찜질도 했지만 차도는 커녕 더 심하게 아프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데(아래 글을 목사님 글 베낀 건데도) 지금 한 시간이 넘게 쓰고 있다. 안그래도 간만의 출근(?)이 조금 심란한 터였는데 말씀과 교제로 겨우 마음을 가다듬었건만, 이 손가락 통증으로 인해 신경이 다시 예민해지고 있다. 오늘 경험한 은혜와 고백이 무색할 정도로 내가 연약한 존재임을, 주님은 이렇게 또 보게 하시는 것 같다.
머릿 속에 별의별 생각과 상념이 떠돈다. "아 아파 죽겠네, 진작 병원 갈 껄 / 지금 뭐하냐 안자고 / 아 지금 자면 몇시간 자는거지 / 내일 별 일 없겠지 / 글에 내 마음과 심경이 잘 드러나고 있나 / 이 문장에 이 단어가 맞나 / 생각보다 내 마음은 얇디 얇은 종잇장 같구나, 모지리 같은 놈 / 자기는 잘 자고 있나 / 우리 부모님 어떻게 호강시키지 / 동생은 잘 있나 ... 등등등
이 가운데 주님 생각은 정말 안난다. 철저하게 내 중심이다. 염치 없지만 자기 전 마음 속으로나마 읊조리고 자려고 한다. "주님, 믿음 없는 저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버틸 수 있는, 기다릴 수 있는 믿음 하럭해 주세요. 절 놓지 마세요 주님...."
요즘 사람으로 사는게 참 힘이 듭니다. 더불어 목사로써 사는 것은 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종종 이렇게 유혹합니다. "왜 그리 복잡하게 삽니까, 어렵게 살지 말고 쉽게 편하게 사세요."라고 말입니다.
사실 아침에 눈떠 기도하며 기도하며 오늘 하루 믿음으로 살겠다고 다짐하지만, 실상 믿음으로 사는 날이 너무 없습니다. 믿음으로 오늘 하루도 살지 못할 줄 뻔히 알면서 다짐은 믿음으로 살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사는 것을 실패한 하루, "대체 믿음으로 사는 게 뭐야,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믿음으로 사는거야?"를 묻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내게는 참 어렵습니다. 철봉에 매달려 안간힘을 쓰며 턱걸이를 하나라도 하려고 철봉대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꼭 믿음으로 사는 것이 이와 같습니다.
성경을 묵상하다 야곱의 삶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야곱이 과연 말씀으로 산 사람인가...'
적어도 내 기준, 내 생각으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야곱을 믿음의 삶을 산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물론 야곱이 험악한 세월(창47:9)을 보냈다고 이야기 하지만, 야곱은 그의 열조에게로 돌아갑니다.(개역개정은 백성에게 돌아갔다고 합니다.) 즉 믿음으로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산 사람이 야곱인데, 그 험악한 세월을 믿음으로 살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험악한이라는 말은 「라」라는 히브리말입니다. 즉 나쁜, 악한 것을 이야기합니다. 나쁘고 악한 날들이 일어났으며, 되어졌다는 말입니다.(물론 험난하게 살았다는 의미도 있는 듯) 즉 이렇게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고 하였는데 야곱은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다고, 이긴 것이 아니라 결국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믿음으로 살면 세상을 이기고 사는 것이라고 알았는데, 믿음으로 살아도 세상을 이길 수 없구나. 세상을 이기고 사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구나. 그래서 내가 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오늘의 험악한 나날을 견뎌내는 것이며, 결국 유일하게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다시 오실 내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구나'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견뎌낼 힘이 되고, 이겨낼 은혜가 되는 참 믿음은 무엇인가를 요즘 깊이 묵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믿음으로 세상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냥 견뎌내며,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위태하게, 누가 보더라도 위태롭게 말입니다. 넘어질 것 같으면서 넘어지지 않고 비틀거리면서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 "아, 야곱이 이렇게 살았구나"를 깨닫습니다. 다짐하고, 결심한 대로 살지 못하고 세겜을 떠나 벧엘로 올라가지만 다시 세겜에서 살고, 세겜 근처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며 사는 야곱의 모습 속에서 지지리도 못난 나의 모습, 오늘 이 시대를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살았던 시대나, 오늘 이 시대나 하나님 한 분을 향한 갈망, 내일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사는 자는 적습니다. 결국 믿음은 세상을 이기는 힘이 아니라, 오늘을 견디어 내는 힘이며 내일을 기다리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히 우리 성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은 지금, 즉 오늘을 버텨내고 견뎌내는 것임을 말입니다. 매일매일 승리와 패배로 점철되는 삶이 아니라, 하루하루 견딤과 버팀 그리고 기다림이라는 삶의 열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종국에는 이겨낼 힘이 된다는 것을.
믿음은 버텨내는 것이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버텨내고 기다리며 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15:57)라고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이김, 승리를 누리게 될 때까지 버텨내고 기다리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2020. 2. 2.
사는게 힘들어 울고 싶어지는 날에
윤희원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