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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박영호,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IVP)

여돌북클럽 2021. 9. 17. 20:31

간수는 왜 자결하려 했을까? (행16:23-32)

1. 바울이 갇혀 있던 옥문이 지진으로 흔들린 것을 발견한 간수는 자결을 시도했고, 바울은 황급히 막았다. 간수는 왜 자결하려 했을까? 죄수를 지키지 못한 책임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한 책벌의 두려움 때문이었다고 보는 주석가들이 많지만 그리 석연치 않은 설명이다. 아무런 조사나 책임 추궁, 변명의 과정 없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다는 점, 또 지진이라는 천재지변은 정상참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2. 로마인들은 천재지변을 신들의 행위로 이해했다. 지진, 메뚜기 떼의 습격, 천둥, 번개 등을 신의 분노를 나타내는 징조라 여길 때, 원로원은 이를 공식적으로 프로디기움(prodigium)으로 지정하고, 국가차원에서 신을 달래기 위한 제의적 행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 세계에서 지진은 신의 분노를 나타내는 가장 확실한 징조로 이해되었다. 

3. 간수는 자결을 말리는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두려움에 찬 경의를 표하며 대뜸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30절)"라고 묻는다. 자결이라는 반응은 그가 심리적 공황 상태에 있었음을 보여 주며, 이런 상태는 그의 종교 세계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4. 사도행전은 감옥이 흔들리면서 로마의 행정 권력뿐 아니라 그들의 종교 세계도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 준다. 그 흔들리는 사회에서 공황에 빠진 이에게 바울은 복음을 전한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바울은 로마의 가정 체계를 흔들거나 부정한 체제를 일부러 공격하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빌립보의 주민과 관원들이 적절한 재판 없이 로마 시민을 매질함으로써 로마의 법치와 로마적 생활 방식의 근간을 흔들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5. 바울은 조용하게 복음을 전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전한 복음, 그 복음이 담고 있는 하나님은 로마 세계 전체를 흔드시는 분이었다. 사도행전은 한편으로는 로마의 체제를 존중하는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를 대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 체제 위에 계신 하나님, 당신의 뜻에 맞지 않는 체제라면 언제든지 흔들 수 있는 하나님을 함께 증언하고 있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진저!

 

_박영호, <우리가 몰랐던 1세기 교회>(IVP)